농사펀드의
다양한 이야기들

에디터가 쓰다 #57. 농부의 현장은 논밭만이 아니다.

새내기 에디터입니다. 

오늘 글은 좀 깁니다.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할까' 싶어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긴 글 마음먹고 읽어주세요.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아침 5시 반. 정신이 몸을 깨우니 일단 일어나서 밖을 나가 봐야죠. 어제는 새벽 2시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동네 일 처리한다고 시청에도 갔다 오고, 새로운 마을 사업을 만든다고 해서 회의도 참석했습니다. 사실 가서도 조금 졸았습니다. 아침에는 논에 나가야 하고, 점심에는 깔끔하게 입고 나가봐야 하니 잠이 쏟아질 수밖에요. 마을에 필요한 활동비, 인건비 등 다양한 예산을 배정해준다고 하니 조금 졸리더라도 회의에 참석해야지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 지 모릅니다. 가끔씩 잡초로 덮인 밭을 볼 때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러려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닐 진데, 농부가 농사만 짓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참 오늘 저녁 전까지 택배 보내야 하는데, 얼른 일어나야죠.


어차피 문제는 생길꺼야.. 그래도 제발... 올해는 제발... (출처_Unsplash)


우리는 모두 모순 속에서 삽니다. 종종 그 모순은 정체성을 흔들 만큼 치명적이기까지 해요. 예를 들면, 친환경 먹거리를 추천하는 농사펀드 에디터가 점심마다 인스턴트식품을 먹는다든지 말이죠. (궁금하시면 인스타에 #FFD_MEAL을 검색해주세요. 저희는 여러분들의 관심을 원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으로 소비를 하는 순간에도 모순이 존재합니다. 좋은 식재료와 맛있는 음식들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 누군들 이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워요. 심지어 동물복지 축산이나, 자연순환 농법처럼 좋은 방법으로 길러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근데 이 모든 것들을 만드는 농부가 밤낮 잠도 못 자면서 농사를 지었다면요? 심지어 그에 대한 적절한 금액을 받지 못했다면요? 나의 소비가 내가 사는 세상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맛, 가격, 영양 그리고 농부의 인권까지 고려하여 소비를 선택하기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그럴 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적 소비'에서 '윤리적 이성'을 더하면, 우린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맨 앞에 전해드린 농부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실제로 저런 일은 없어요. 하지만 저런 일이 아예 없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꼭 저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라면 오로지 농사만 짓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투잡 이상은 뛰고 있다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농부 개인은 모두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들 사장님입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시키 위해서 본업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일들을 하죠. 문제는 그들이 투잡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어차피 문제는 생길꺼야.. 그래도 제발... 올해는 제발... (출처_Unsplash)


'올해도 또?' 아닙니다. '올해는 또?' 맞습니다.
농부가 투잡을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불안정하다고 이득이 더 큰 것도 아닙니다. 매년 어떤 변수가 들이닥칠지 몰라서 대비하기도 어렵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태풍과, 가뭄, 황사는 기본입니다. 각종 질병들과 알 수 없이 몰려든 병충해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일단 피해가 시작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매년 문제가 터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알기 힘듭니다. 오죽하면 선조들도 농사짓는 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풍... 제발 빗겨가줘 제발... 비나이다 비나이다 (출처_Unspash)


"農者天下之大本"

(농사천하지대본)


사전적으로 풀자면 '농사일을 하는 것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큰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농사일이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뜻이죠. 당시에는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지만, 중요한 만큼 어렵고 변수가 많아 챙겨야 할 것도 많은 것이 농사일입니다. 그래서 농사의 변수에 대해 얘기하는 속담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변수를 속담으로 냈는지 참 별난 이야기도 많습니다. '삼사월은 굼벵이도 석자씩 뛴다'는 말은 3-4월에 대부분의 농작물이 파종하는 시기이기에 열심히 일하라는 말입니다. '그 느려 터진 굼벵이도 뛰어 댕기는 데 넌 뭐하냐. 일도 많은데 얼른 뛰어 댕겨라.'라는 뜻이죠. 하지만 속담도 모든 변수를 담지 못합니다. 어느 30년 차 농부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농사는 하늘이 지어주는 거지, 난 그저 하늘이 시키는 대로 내 몸뚱이를 움직일 뿐이야.'

대안은 없나?
매년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마땅치 않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1년 농사가 망했다고 누가 보상을 해주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일부 보조금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농부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도 지역에서 무언가 활동을 했거나, 특정 대상이 되어야지만 일부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농부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수입을 갖기 위해서 부업을 합니다. 동네 다른 농부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마을 협동조합의 총무를 맡기도 합니다. 그 마저도 안되면 동네 마트에서 일을 구하기도 하죠.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좋은 농법? 無로 돌아갈 수밖에.
소비의 시대, 브랜드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브랜드가 전하는 이미지를 보고, 브랜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소비를 결정하죠. 우리는 카드를 꺼내기 전에 그 물건이 가진 스토리를 살펴봅니다. 농부가 농사만 짓지 않고 홍보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상품뿐만 아니라 농사 이야기도 함께 전하기 위함이죠. 국내에도 다양한 농부들이 농가를 브랜딩 하여 직거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고집스럽게 지은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식탁에 올라갔으면 하는 거죠. 블로그부터 인스타그램까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홍보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 효과를 크게 본 곳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줄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수도 없이 많은 브랜드 속에서 '농가 브랜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출처_Unsplash)


왜 그럴까?
농촌 먹거리의 주된 무대는 마트입니다. 대부분의 농부들에게는 최종 소비자가 주된 타깃이 아니에요. 한꺼번에 물량을 소비해줄 도매인이 주된 타깃이죠. 도매인은 농작물의 최종 상태를 주로 궁금해합니다. 가격과 신선도와 같은 것들이죠. 농부가 본인의 농작물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준비해도 진열장에 올라가는 정보는 '품명, 생산지, 가격'까지 딱 세 개입니다. 현실적으로 개별 농가가 아무리 브랜딩을 한들 그 이야기가 온전히 소비자에게 전달되기는 어렵습니다. 아쉽지만, 하나라도 더 팔 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농부의 역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기준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농부의 역할은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의 역할입니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이죠. 농부가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농사에만 집중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상품이 엉망이면 그건 하나마나한 일입니다. 하지만 홍보하느라 농사를 못 짓거나 어차피 홍보해도 아무도 안 알아준다면, 농부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좋은 농법으로 농사짓는 것에만 집중하고 홍보를 포기하거나, 어차피 알아주지도 않는데 좋은 농법으로 농사짓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죠. 대부분 이런 무관심이 지속될 때, 농부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농부도 먹고살아야죠.


안타깝다고 봐주는 건 없어. 네가 내 지갑의 사정을 봐주진 않잖아? (출처_Unsplash)


그동안 농사펀드에서 농부들을 만나며 문제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농부들의 '근무 환경'이었습니다. 근무 환경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누구도 농부가 주말에 일하고, 밤낮없이 일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어 농부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 한 농부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가서 그 이유로 발송이 지연된다는 연락을 돌렸습니다. 농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대부분의 투자자분들도 함께 농부님을 걱정해주셨어요. 아마 이 농부의 농산물이 '품명, 생산지, 가격'으로만 표현되었다면 과연 그런 이해가 오고 갔을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농부님은 쾌차하여 농산물들도 안전 배송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먹거리 그 자체, 그리고 그 먹거리를 만드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매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린 우리가 먹는 먹거리를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나 궁금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 관심을 끊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해요. 멀쩡히 밥 먹다가 쓰러지고, 그 이유가 먹거리 때문이라도 우린 알 길이 없습니다. 혹은 농사짓다가 쓰러진 농부의 밥으로 멀쩡히 밥 먹고, 아무런 감정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을 거예요. 저도 사실 오늘 점심때 '닭다리 스낵'을 먹었어요. 그래도 포장지 버리기 전에 어디서 생산했고, 책임자는 누구며, 뭐가 들었나 확인해봤답니다. 모순 속에 산다고 관심을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기회가 될 때 내가 먹는 먹거리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농부의 현장은 논밭만이 아닙니다.

2018년 7월 11일
좋은 가치를 올바른 방법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강규혁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