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펀드의
다양한 이야기들

에디터가 쓰다 #28. 안부 전화


지난 추석, 긴 연휴 중에 한 번도 못했던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번 일로만 연락드리던 농부님들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연휴 내내 연락을 드렸지만 아직도 다 연락드리지 못한 것을 보니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나 함께한 농부님들의 수가 체감되었습니다. 


“농부님, 잘 지내시죠? 농사펀드 이진희입니다. 

매번 일로만 전화 드리다가 오늘은 안부인사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분명 마음속 애정은 높은데 안부를 묻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후련할 것만 같았던 마음이 전화를 마칠 때마다 무거워졌습니다. 석연찮은 마음을 가지고 연휴가 지나버렸습니다. 


며칠 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농사펀드와 펀딩을 준비하고 있는 농가였습니다. 농장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농사펀드를 찬찬히 다시 설명 드렸습니다. 


‘다 좋은데요, 농사꾼이 뭘 알겠어요. 근데, 하도 떼먹힌 적이 많아서.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 이제 막 3년이 되어가는 작은 회사, 이미지로는 농촌과 멀어 보이는 여자 둘. 정황상 그런 생각을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때는 대형유통 친환경에 납품하셨던 농부님 내외였으니 어찌나 의심스러우셨을까요. 농부님께 농사펀드를 소개하기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여전히 농부님의 표정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알겠는데, 잘 모르겠네, 믿을 만한 것을 알려 줘봐요. 믿을 수 있게.’

 - 농부님, 제가 농부님 앞에서 좋은 소리 하겠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저는 믿음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런데도 제가 농부님께 지금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저희가 작은 회사고, 유통으로는 3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지만 200분의 농부님들과 매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농부님께 유일하게 보여드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원하신다면 저희와 함께 하는 지역의 농부님, 혹은 원하시는 농부님과 통화를 하실 수 있게 연락처를 전달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저희도 더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혼자 농부님을 설득시키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200명의 농부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말마다 잠시 멈춰놓았던 안부 전화를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두 번, 세 번. 쌓이다 보면 일상적인 대화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겠지요. 하지 않아서 어색했던 것뿐이었겠지요. 다음번에는 첫인사를 이렇게 해봐야겠습니다.

‘농부님, 저 진희예요. 뭐 하고 계세요?’


2017년 10월 27일

여전히 농부님들의 귀여운 서울 딸내미가 되고 싶습니다. 이진희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