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펀드의
다양한 이야기들

에디터가 쓰다 #86. 유기농 밤, 추억을 물려주는 간식


 

박도영 농부의 밤

유기농 밤, 추억을 물려주는 간식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추억의 간식

제철 과일이라는 말이 많이 무색해졌습니다. 하우스재배는 물론이고 외국에서 과일을 수입해 오고 저장시설도 좋아져서 대부분 과일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되었죠. 그렇지만 30~40년 전만 해도 과일은 제철에만 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수확 후 먹는 과일의 맛과 기억이 어우러져 즐거운 추억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밤은 여전히 가을에만 수확되고 늦가을~초겨울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별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밤이나 찐 밤 형태로 먹을 때면 그 맛뿐만 아니라 과거 추억도 같이 떠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야기 간식인 것 같습니다.


달콤한 밤, 향이 짙은 밤

밤에도 여러 품종이 있다는 거 들어보셨나요? 그중에서 여기 2가지 품종 밤이 있습니다. ‘축파’와 ‘대보’입니다. ‘축파’는 알맹이 크기는 다른 품종에 비해 중간 정도의 크기이지만 당도가 상당히 높고 단단하여 입안에서 부서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래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군밤으로 먹으면 일품입니다. 반면 대보는 삶으면 속살이 노랗고 밤 특유의 향이 짙습니다. 늦가을 찜기나 냄비에 익히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한 알씩 까-득 깨물어 먹으면 어떨까요.


털지 않고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밤은 억지로 털어서 수확한 열매보다 자연스럽게 떨어진 밤이 영양가와 당도가 높고 식감도 아삭아삭하게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9월이 되기 전 15,000평에 자라있는 풀을 깎기 시작합니다. 풀에 숨어있는 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죠. 그뿐만 아니라 밤은 떨어지면 하루 3일 안에 주워야 합니다. 바닥에 오래 있으면 미생물과 병균이 밤에 옮겨갑니다. 특히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들이 먼저 알고 달려듭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소비자 손에 갈 때면 벌레 먹거나 썩기 십상이죠. 

잘 익은 밤나무를 올려다보니 신기한 풍경이 보입니다. 왼쪽 밤나무는 송이째 떨어지고 오른쪽 밤나무는 알맹이만 떨어지고 송이는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농부가 키우는 품종은 대부분 축파와 대보인데 축파는 송이째 떨어지고 대보는 알맹이만 쏘-옥 바닥으로 흩어집니다. 그래서 가을은 농부에게 풍성한 계절임과 동시에 시간을 다투는 시절입니다.


대를 이은 밤 농사

지천리 마을 회관에서 5분 정도 차를 몰면 언덕배기 비탈길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소박한 웃음으로 에디터를 기다리고 있는 박도영 농부를 만났습니다. 40년 전 결혼해서 청양으로 터를 옮긴 농부는 평생을 땅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토마토, 멜론, 오이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다 30년 전에 밤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숙 어른이 나이가 들어서 밤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농사를 물려받은 겁니다.


최고령인 나무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35년 된 밤나무를 가리키는 농부 앞에서, 마치 함께 나이 들어온 친구를 소개받는 듯합니다. 밤나무 사이를 함께 걸으며 농장 규모를 물었더니 “5정”이라고 대답하는 농부의 말에서, 다시 한번 대를 이어 오래 농사한 업력을 가늠해 봅니다.

* 1정(町) : 일본제국 및 대한제국에서 제정한 도량형으로 약 3,000평을 의미함.


| 가파른 비탈길을 농부는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며 밤 나무를 돌본다.



40곳 농가만 남은 청양 유기농 밤, 그 중 한 곳

청양에서 친환경 밤을 생산하는 게 박도영 농부만은 아닙니다. 청양군 주도로 25년 전에 친환경 밤을 105개 농가와 함께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함께한 농부들 모두 자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친환경 재배를 반겼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밤은 벌레가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여서, 재배할 때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재배하기 힘듭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직접 깎아야 하는 수고로움과 합성 농약으로 항공 방제하지 않고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등 고된 작업이 매년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농가들이 한둘씩 친환경을 포기했지만, 농부는 농사지을 때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먹는 사람도 건강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끈기로 2013년에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지금은 40개 농가만이 유기농 밤을 청양에서 생산한다고 합니다. 이번 연도 가을은 특히 농부에게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비도 너무 많이 오고 날도 뜨거워서 작년보다 해충 피해가 더 컸습니다. 농약을 많이 뿌렸으면 좀 괜찮을지 몰랐겠지만, 농부는 그런 생각을 스치듯 하고 접습니다. 내년에도 남은 농가끼리 작목반을 구성해서 함께 유기 퇴비와 농약을 구매하며 서로를 다독일 듯합니다.


| 생산자 ‘강오식’은 ‘박도영’ 농부의 남편으로 부부가 함께 밤농사를 짓고 있다.


내가 경험한 기쁨과 감사를 신선한 밤을 통해

인터뷰하는 중간중간 농부는 굵은 손마디를 주물렀습니다. 알밤을 하나하나 줍고 송이를 까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는 거겠죠. 농사는 정말 힘들다는 말을 농부는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만큼 즐겁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면 하루하루가 비슷하지만, 농사는 봄부터 여름까지 고되고 가을에 고된 노동을 보상받는 수확이 있고 겨울에는 내년을 준비하며 쉬어가는 흐름이 행복한 삶이라 눈을 반짝입니다.

그러면서 그 결과물인 밤을 구매해 주는 사람들과 맛있게 먹어주는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합니다. 밤은 딸기나 샤인머스켓처럼 한입에 툭 털어 넣어 먹을 수 있는 과실이 아닙니다. 껍질을 까야 하고 생으로 먹기에는 다른 과일에 비해 많이 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매년 잊지 않고 구매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밤농사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유기농 밤을 먹는 4가지 간단한 방법

1. 에어프라이어로 간편하게

알밤을 약 20분가량 물에 불린 후 에어프라이어 온도를 200도 맞추고 20정도 예열합니다. 참고로 알밤에 칼집을 내고 물에 불리면, 따뜻한 군밤 껍질이 쉽게 벗겨집니다.

2. 전자레인지 이용하기

알밤에 칼집을 낸 뒤 일회용 종이봉투에 밤을 넣고 입구를 살짝 비틀어 막은 뒤 약 5분 돌려주면 간단하게 군밤이 완성됩니다. 에어프라이어가 없어도 맛있는 군밤을 먹을 수 있습니다!

3. 직화냄비 이용하기

이 방법으로 길거리에서 사 먹던 추억의 군밤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밤을 물에 불린 뒤 칼집을 내고 직화냄비에 밤을 올려놓고 중간 불을 이용하여 약 20분가량 노릇노릇 구워줍니다. 속살까지 잘 익을 수 있도록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주면 더욱 좋습니다.

4. 생율로 먹는다면

가을에 수확한 밤은 파근파근하고 고소한 맛이 좋지만, 단맛이 한겨울보다 조금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때 별미로 넣어 먹으면 야채와 조합이 아주 좋습니다. 






The Taste Edit - 황진욱 에디터
2023. 09. 14

본 콘텐츠는 더테이스트 청양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는 더테이스트 청양의 로컬에디터 육성프로그램입니다. '나의 부캐, 로컬에디터'라는 부제처럼 꼭 지역에 이주하지 않더라도 주말 여유시간을 활용해 지역과 관계맺고 취재, 콘텐츠 제작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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